[데스크 칼럼] 잠깐, 산불조심하고 가시게요?

◇ 최호철
본지 편집국장
원주경찰서 경찰발전위원
원주시 명륜2동 주민자치위원

며칠 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인제군 국도변에 ‘잠깐, 산불조심하고 가시게요?’라는 산불조심 홍보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물론 얼핏 보면 산불조심을 하라는 존칭인 것 같지만 ‘가시게요’는 이 문장에서 존대어로는 맞는 표현이 아니다. 국립국어원 해석에 따르면 “‘가시게요?’에서 ‘게요’는 해체의 어미 ‘-게’에 보조사 ‘요’가 결합한 형식으로, ‘해요체’ 종결 어미인데, ‘해요체’는 격식을 갖추어 쓰는 표현이 아니라는 면에서 ‘가(시)려고 하십니까?/가시겠습니까?’와 같이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의미에 맞지 않는 글을 관공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하물며 국민을 상대로 홍보하는 글이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요즘 말에 대한 말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사회 일각에서는 폭언과 욕설이 보통이고 학교에서까지 이런 현상이 팽배해 있다. 미디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sns)에서는 거짓말, 폭언과 모욕적 발언이 도를 넘는다. 폭력적인 저질의 언어가 횡행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수준을 가늠케 해준다. 사회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국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폭언과 저질 발언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며, 말이 사람의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요즘 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코앞에 닥친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언론에서 자주 쓰는 말로 ‘혈세(血稅)낭비’와 ‘끝장토론’이 눈에 띈다.
혈세라고 하면 국민의 피 같이 아까운 돈이라는 뜻에서 쓰는 말일 게다. 봉건왕조시대 같으면 먹고살기 힘들고 지친 백성들이 국가와 관리에게 바치는 세금을 가히 혈세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국가시대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한 바에 따라 국가에 내는 세금을 혈세라고 하면 우선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은연중에 탈세를 불법으로 보기보다는 재산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그릇된 풍조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국가가 세금으로 하는 사업을 올바른 시각으로 보지 않는 습성을 길러줄 수도 있다.
‘끝장토론’이란 말도 과격한 표현이다. 민주사회에서 모든 정책은 단계별로 토론을 거치기 마련이다. 모든 토론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끝이 있을 수 없다. 토론이 끝나지 않으면 그때는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민주적 절차다. 논란이 많은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기 위해 보다 종합적이고 철저한 토론을 한다는 의미로 ‘끝장토론’이란 말을 쓰는 것이겠지만, 상대편의 입장을 수용하기보다는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요즘 흔히 듣는 ‘적폐 청산’이라는 말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다층적인 문제들과 해결 방안을 담은 언어로 적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말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오랫동안 쌓여온 폐해를 한 번에 해결한다는 것인데, 무엇이 ‘적폐’이며 어떻게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까? 누가 ‘적폐’의 내용을 정의하는 권한을 가질 것이며, 또 누가 ‘한 번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제도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주체는 주권자인 국민들이다. 국민적 공론장이 자유롭게 작동하고 그곳에서 문제가 정의되면 법 앞의 평등 원리를 적용하여, 해결해가는 과정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다. 지금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 민주주의자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앞서 예를 든 용어들 외에도, 우리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소통을 어렵게 하는 말들과 글이 수도 없이 많다.
알맞은 때와 장소에서 올바르게 써야 하지만, 잘못 쓰이고 있는 말과 글을 바로잡아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국가와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찾아내 바로잡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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