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종
본지 대표
지난 20일은 39번째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 된지도 11년이 지나고 있지만, 장애인 인권은 갈 길이 멀다.
장애인의 날인 20일 집회를 연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하라! 폐지하라! 폐지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김없이 투쟁 결의대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31년 만에 장애등급제 폐지가 시작되지만, 여전히 당사자의 필요와 요구는 반영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OECD 평균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
오는 7월이면 장애 등급제 바꾼다고, 30년 넘은 녹슨 나쁜 법을 바꾸겠다는 말을 반복해 왔고 장애를 가진 이들은 ‘차별 없는 일상’을 살기 위해 배려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외침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과 제도 개선을 우선한다고 한 일성들이 사회제도 안에 장애인 복지가 그대로 다 녹아 들어갈 수 있는 그런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 배려와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은 물론 차별 없는 시선이 필요하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실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역사 속의 장애인의 삶을 통해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인간의 역사와 장애의 역사는 같이 간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특정’인 또는 ‘특정 집단’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장애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조선이 신분제 사회였다는 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에 한해서는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요즘 말로 “헉”? 이라고 놀란 표정을 짓는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때는 장애를 질병으로 여겼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은 장애인을 ‘독질인(매우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 ‘폐질인(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 ‘잔질인(몸에 질병이 남아있는 사람)’으로 불렀다.
‘허조’라는 사람은 체구가 작고 말랐으며 어깨와 등이 굽은 척추 장애인이었는데, 태조에서 세종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왕을 거친 명재상이었다.
그리고 숙종 때 일각정승(一脚政丞), 즉 한쪽 다리의 정승이라는 별명을 가진 윤지환은 지체장애인이었는데 ‘임금 앞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것은 불충’이라며 사직을 청했지만 숙종은 ‘걸을 수 없으면 기어서라도 어전에 들어오라’ 명하면서 사직과 반려를 반복했다.
그리고 세조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돌봄 서비스를 강조했는데, 잔질과 독질로서 의지할 곳 없는 자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이미 ‘명통시’를 설립했고. 농아와 건벽(지체장애인)들은 한성부(서울시)가 돌봐줄 ‘도우미’를 널리 찾고, ‘동서활인원’이 맡아 후하게 구휼했다. 또한 계절마다 부양한 결과를 계문(보고)하도록 했다. -『세조실록』, 세조3년(1457) 9월 16일.-
여기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앞서 언급한 위인들을 장애를 ‘극복’하며 뛰어난 업적을 일구어 낸 ‘드문’ 역사 속 위인으로 바라보기보다 그들이 가진 능력을 노력과 의지로써 업적을 일군 또 한 명의 ‘우리’라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 같은 사람이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걸음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식을 바꾸는 거름이 헛되이 구호에 지나는 위정자들의 포퓰리즘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 갈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로 한정하지 않고 직업을 갖고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조선 시대 장애인은 음지에 숨어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양지에서 비교적 떳떳하게” 살았다. 능력만 있다면 장애가 있어도 말직 관리가 정승까지 오르는 게 가능했다. 임금 중에도 장애인은 한두 명이 아니었고, 모든 왕대(王代)마다 장애인 관료 역시 한두 명쯤은 있었다. 국가는 장애인에게 각종 세금을 면제해줬으며 재난이 닥치면 최우선으로 장애인을 구제했다.
“~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 전환이 시급하고, 지금의 한국이 100년 전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당사자인 장애인들 역시 자신들의 역사적 전통과 능력을 다시금 확인하고 좀 더 당당하게 세상과 맞섰으면 한다.